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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공 휘 세기(林隱公 諱 世箕) 행록

1. 대곡동 입향조 임은공 휘 세기(林隱公 諱 世箕)께서는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증직(贈職)받으셨으며 임진난(壬辰亂)을 피하여 충북 청주(忠北淸州)에서 이거(移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200여 세대가 살고 있으며 달성군 화원면 대곡동(達城郡 花園面 大谷洞)에 20여호가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임은공 휘 세기(林隱公 諱 世箕)의 재실(齋室) 경림재(景林齋)가 있다.《월배향토지》

朴世箕 密陽人 文度公 朴薰 後孫 號 林隱은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버이 상(喪)에 시묘(侍墓)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贈職)되었다.《1937년 교남지 효자》

호(號)는 임은(林隱), 문도공(文道公)박훈(朴薰)의 5세손으로 항상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 때문에 슬퍼하기를 말하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다 죽으니 향리(鄕里)에서 효성을 칭찬(稱讚)하였다.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贈 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금성지 효행, 월배향토지, 금성지 효행》

2.지금부터 320년전 사대부(士大夫)집안의 오남중(五男中) 막내로 테생하셨고 세상은 당파싸움으로 휘말였고 양반의 철퇴시 부모에대한 효행이 지극하여 시묘(侍墓)를치르고 종친부의 숙청시 충청북도 청주(淸州)에서 37세에 성주목 대곡촌(지금의 달성군 화원면 대곡리에 이거하여 현재 15세손(규정29세)까지 대를 이어 후손은 800명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 중 이며 일족들은 공의 후손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밝은 내일을 힘자게 살아가고 있다. 묘는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로등 진좌이며 향사는 음력 10월 15일이다.

『初諱時賢字時中號林隱公肅宗戊辰生忌十月二十日墓大邱達西區大谷洞路嶝辰坐床石遭龍蛇亂自淸州移干星州牧花東面大谷村常以風樹哀感不禁血淚而終鄕入爭墓其孝事載嶠南誌贈嘉善大夫戶曹參判淑夫人全州李氏父大連墓公兆同原◇舊譜以公爲江,文度公(薰)派五世孫然考諸 戊子亡春以追感亡意築室于新村里中子原而扁其額曰景林齋達城徐健洙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