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 유래
밀양박씨 12중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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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랑공 문유의 행록
상장군 사경의 행록
전서공 침의 행록
부제학공 강생의행록
정자공 절문의 행록
공효공 중손의 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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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랑공 휘 문유(佐郞公 諱 文有) 행록
『擢第拜典利佐郞歷慶州判官亦三品致仕享年九十五.配碧珍李氏父密直使玳山花先生大提學諡文安公堅幹孫生三男二女兩位墓所失傳設祭壇于考位壇下全州鳳棲洞』

1. 과거에 급제하여 전리좌랑에 천거되고 경주판관을 거쳐 삼품에 올랐다가 치사하고 고향에 돌라와 사시였으며 95세의 상수를 누렸다 부인은 벽진이씨이며 부는 밀직사대, 요산화 선생 대제학 견간의 손이다, 생 3남 2녀. 양위의 묘소를 실전하였으므로 서기1964년 갑진에 선고위 제단 아래 전주 봉서동에 설제단 하여 제사를올리고 있다 구보를 살펴보니 배위가 미상하였는데 밀성대군 설단후 무진 (1928)박씨 총보 발간시 영천에 사는 벽진 이씨 족보를 참고한 즉 공이 사위로 입록되어 있으며 규정공과 상장군공 세 분의 성명과 관직이 확실하게 올라있어 의심할바 없으므로 이에 수록한다
☞ 밀직부원군 중미 (密直府院君 中美: 밀양박씨 밀지부원군파 중조)
☞ 벽진이씨유래

 

2. 고려 전리좌랑 박공 휘 문유지제단기(高麗 典理佐郞 朴公 諱 文有之祭壇記)

공의 휘는 문유요 박씨이다. 밀성대군 위 언침께서 처음 관향을 받으셨고 규정공의 맏아드님 이시다. 관직은 전리좌랑(典理佐郞), 경주판관으로 삼품(三品)까지 이르니 향년 59세였다.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시며 항상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리로 집안에서 수범을 보이시고 만세토록 변하지 않을 든든한 가풍을 이루시어 오늘에 수많은 후손이 모두 따뜻하고 인자한 혜택을 받으니 그 집안 다스리는 도리가 어찌 크다하지 않겠는가. 우리 박씨가 근본은 왕가로서 고려에 이르러서는 실로 공의 선후로 각각 상대로부터 차차 발전하게 되었다. 세대가 오래되고 멀어짐에 전하여지지 못하는 바가 많고 역사나 가승이 역시 징험하지 못하고 있다. 자손들이 공을 한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고 또한 제단이 없을 수 없다하여 마침내 규정공 제단 왼쪽에 설단하여 상석을 따로하여 함께 제사하니 정과례에 모두 편안하여 신령과 사람이 섭섭함이 없을 것이다. 이 역사에 족형(族兄) 종용(鍾用)이 사손(嗣孫) 상규(商圭)를 보좌하여 힘을 다해 공사를 마쳤다. 옛날에 전하지 않았는가 「인자(仁者)는 반드시 뒤끝이 있다」하였고 또 말하기를 「큰 덕이 있는 이는 반드시 대대로 제사를 받들게 된다」하였으니 이것은 공과 같은 이를 두고 말함이 아닌가. 사손께서 종호에게 명하여 글을 짓도록 함에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그 개황을 이와 같이 밝혀둔다.


<원당제향: 음력 10월1일, 전주 봉서재: 음력 3월 7일>

신라기원 2016년 기해(1959) 10월 상순
후손 종호(鍾浩)는 삼가 짓고
전주 이광열(李光烈)은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