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族譜: 보첩)란
족보(族譜) 용어
항열(行烈) 이란
관향(貫鄕)의 기원
세(世)와 대(代) 란
연대, 12간지, 방위각
품계 비교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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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 용어 해설(譜學用語解設)

 

 

1.시조(始祖)와 비조(鼻祖)

시조(시조)는 맨 처음 윗대의 조상으로서 제 1세 선조를 일컫는다. 비조(鼻祖)는 시조 이전의 선계(先系)조상중 가장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시조 이전의 선계가 없을 경우에 한하여 시조를 정중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비조라고 말하는 수도 있다.

 

2.중시조(中始祖)

중시조(中始祖)란 시조 이하의 쇠퇴하였던 가문을 다시 중흥시킨 조상을 온 종중의 공론(公論)에 따라 정하고 중시조로 추존(追尊)하는 것이며 자파 단독의 주장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3.본관(本貫)과 관적(貫籍)

본관(本貫)은 향관(鄕貫), 관향(貫鄕), 향적(鄕籍), 관적(貫籍), 적관(籍貫), 족본(族本)이라고도 한다고 경국대전에 정의하고 있다. 성(姓)은 혈통의 연원(淵源)을 의미하여 씨(氏)는 동일한 혈통을 가진 자가 각지에 분산되어 있을 때 그 일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관은 곧 씨에 해당된다. 본관은 신라말에 처음으로 생겨 고려시대에 일반화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모든 사족(士族), 서민(庶民)들이 본관을 가지게 되었다. 성과 본관과의 관계를 보면 동성이본(同姓異本)[강능김씨와 공주 김씨는 같은 김알지의 자손이나 본관이 다름], 동성동본(同姓同本)[남양 홍씨의 토홍과 당홍], 이성동본(異性同本)[안동 김씨 가운데 일부가 고려 태조의 사성(賜姓)을 받아 안동 권씨가 됨]이 있다. 관적(貫籍)은 씨족의 본적지란 뜻으로 본관을 대신하여 말하기도 한다.

 

4.분관(分貫)과 분적(分籍)

분관(分貫)은 후예중의 어느 일부가 다른 지방에 이주해서 오랫동안 살다가 그 지방을 근거로 하여 관적을 새로히 창설하게 될 경우에 자동적으로 분관이 발생하게 되어 있으며 이를 다른 말로 분적이라 부르며 이로 말미암아 새로히 설정된 시조를 시관조(始貫祖)라 일컫는다.

 

5. 사관(賜貫)과 사성(賜姓)

사관(賜貫)은 옛날에 공신(功臣)이나 귀화인(歸化人)에게 포상(褒賞)의 표시로 국왕(國王)이 하사(下賜)해준 본관을 일컫는다. 사성(賜姓)은 국가에 큰공이 있으나 성이 없는 경우 또는 그 성이 나라의 왕의 휘자와 동일한 경우에 이를 꺼려서 나라에서 다시 성을 주는 것을 일컫는다. 고전 문헌에 나타난 사성은 신라 335대 경덕왕 시절에 본성인 김씨가 남씨로 사성되었고, 48대 경문왕때 본성이 이씨를 안씨로 사성한 경우를 시작으로 고려 태조때 경주 김씨가 안동 권씨, 광주 이씨가 철원 궁씨로 사성되었고 강능김씨가 강능왕씨로 되는 등 20여 성씨가 있고 중국등 외래성씨가 우리나라 성씨의 53%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6.종파(宗派)와 파속(派屬)

중시조(中始祖)가 정해지므로 종파가 성립되는 것인데 종파나 파속을 밝히는 것은 후예들 각자(各自)의 혈통적 계열을 분명히 하여 촌수(寸數)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보첩(譜牒)에 대한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파속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가문을 중흥시킨 중시조를 중심으로 종파가 설정되는 것이므로 그 중시조의 직함(職銜)이나 시호(諡號) 또는 아호(雅號) 밑에 공자를 붙여서 표시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으나 간혹 문중에 따라서는 일파(一派) 이파(二派) 삼파(三派)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7. 선계(先系)와 세계(世系)

선계(先系)라 함은 시조이전 또는 중시조 이전의 조상을 일컫는 말이며 세계(世系)란 시조로부터 대대로 이어가는 계통의 차례를 말하는 것이다.

 

8. 세(世)와 대(代)

시조(始祖)로부터 아래로 후손을 가리킬 때에는 세(世)를 붙여서 시조를 1세 그 아들은 2세 그 손자는 3세 그 증손자는 4세 자기가 그 고손 자라면 자기를 넣어서 5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로부터 위로 선조를 말할 때는 자기를 뺀 나머지를 따져 대(代)자를 붙여서 일컫는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아들사이가 세로는 2세지만 대로는 1대이다. 즉 시조로부터 45세손이 되는 사람은 시조가 44대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손을 가리킬 때에는 하모(何某)의 몇 세손이라 하고 선조를 말할 때에는 하모(何某)가 몇 대조라고 일컫는다. 고래로부터 대불급신(代不及身)이란 숙어가 전래하여 오고 있으며 아버지가 어린아이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면 그 친구가 묻기를, "그 어린아이가 누구인가?"하면 "나의 2세일세"라고 대답하면 그 친구는 "승어부(勝於父)했다"라고 칭찬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조(玄祖)

고조(高祖)

증조(曾祖)

조부(祖父)

부(父)

자기(自己)

자(子)

손(孫)

증손(曾孫)

현손(玄孫)

래손(來孫)

곤손(昆孫)

잉손(仍손)

5 대조

4 대조

3 대조

2 대

1 대

0

1 대

2 대

3 대손

4 대손

5 대손

6 대손

7 대손

 

9. 선대(先代)와 말손(末孫)

선대(先代)란 말은 본래 조상의 어려 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나, 보학(譜學)에 있어서는 시조이후 상계(上系)의 조상을 총괄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말손(末孫)이란 선대의 반대로 하계(下系)의 자손들을 말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보첩의 부분을 손록(孫綠)이라 한다.

 

10.방조(傍祖)와 족조(族祖)

방조(傍祖)란 육대조 이상 조상의 형제를 일컫는 말이며 자기와 같은 시조의 아랫대의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을 말한다. 족조(族祖)란 동성의 소원(疏遠)한 일가 붙이로서 조부의 항렬 이상을 말하며, 방조이외의 무복지조(無服之祖)를 일컫는 말이다.

 

11. 사조(四祖)와 현조(顯祖)

사조(四祖)란 경국대전에 보면 부(父), 조(祖), 증조(曾祖), 외조부(外祖父)의 총칭(總稱)으로 새로 관월(官월)을 임명(任命)할 때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사조 내에 천계혈통(賤系血統)이 섞여 있는 장리(贓吏)가 없나를 조사하여 서경(署經)을 하게 되어 있었다. 방목(傍目)이나 좌목(座目)에도 사조(四祖)를 기록하였으며, 조선 전기에는 사조 내에 현관(顯官)이 있는 사람이라야 양반으로 간주해 주고 이러한 사람에게는 과거에 응시할 때 보단자(保單子)를 내지 않아도 되게 하였다. 현조(顯祖)란 이름이 높이 드러난 조상을 일컫는 말로 선조의 존칭이다.

 

12. 종손(宗孫)과 장손(長孫)

종손(宗孫)이란 종가(宗家)의 적장손(嫡長孫)을 일컫는 말이고 장손(長孫)이란 종가가 아닌 차가(지차) 집의 맏손자를 일컫는다.

 

13.사손(嗣孫)과 사손(祀孫)

사손(嗣孫)이란 한 집안의 대를 잇는 손자를 말하고 사손(祀孫)이란 봉사손(奉祀孫)의 준말로서 조상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을 일컫는다.

 

14. 봉사(奉祀)

봉사(奉祀)란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일로 사(士), 서인(庶人)의 봉사 대수(代數)와 봉사의 책임자에 과한 사항을 규정하였다. 사, 서인의 가묘(家廟) 설치와 제사규정은 고려 공민왕 2년(1390)에 정몽주(鄭夢周)등의 건의에 의하여 마련되었는데 대부(四品)이상은 3대, 육품(六品)이상은 2대, 칠품(七品)이하 서인은 부모만을 제사하게 하도록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기록되었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육품이상은 3대, 칠품이하는 2대, 서인은 1대 부모만을 봉사하게 하였다. 그러나 명종 년간(1545~1567)에 이르러 관품(官品)에 구별없이 4대봉사를 허용하였는데, 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조선조 후기까지 존속하였다.

 

15.함자(銜字)와 휘자(諱字)

함자(銜字)란 웃어른의 이름자(名字)를 말할 때 생존한 분에 대한 존칭이며 휘자(諱字)란 돌아가신[] 어른의 명자를 일컫는다. 현재 우리 나라 사람의 이름은 대게 호적부(戶籍簿)의 이름 하나로 통용되고 있으나, 조선 말기 갑오경장이후 호적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어렸을 때 부르는 아명(兒名)이 있고, 관례를 거행하고 성년(成年)이 되어서 별도로 보루는 이름 자(字)또는 관명(冠名)이 있으며, 문필 등의 행세에는 이름의 아호(雅號)가 있고, 보첩(譜牒)에 올리는 항명(行名)이 있으며, 그 밖에 따로 행세(行世)하는 별호(別號)등을 사용하여 왔다.

 

16. 시호(諡號)와 사시(私諡)

시호(諡號)란 공신(功臣)이나 중신(重臣)이 죽은 뒤에 평생의 공덕(功德)이나 행적(行迹)을 기려서 나라에서 주는 명호(名號)를 일컫는다. 경국대전에 보면 조선조 세종 4년(1422) 이후로는 종친과 문무관 중에서 정이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에게만 주었으나 뒤에는 범위가 확대되어 제학(提學)이나 유현(儒賢).절신(節臣)등은 정 이품이 못 되어도 시호를 내리었다. 시호를 정하는데 제조(提調)는 관계하지 않고 예조(禮曹)의 판서(判書)이하 만으로 의정(議定)하도록 하였다. 시호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 이의 행장(行狀)을 적은 시장(諡狀)을 예조에 제출하면 예조에서 이를 심의한 뒤에 봉상시(奉常시)를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보내어 시호를 정하였다. 사시(私諡)란 학문이나 덕행이 세상에 높이 알려졌어도 관적이 증시(贈諡)할만한 지위가 못되어 역명지전(易名之典)이 없는 선비에게 붕우(朋友)들이나 일가나 향인(鄕人), 문제자(門弟子) 등이 상의해서 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17. 행직(行職)과 수직(守職)

행직(行職)이란 품계(品階)가 높은 관원(官員)이 직급(職級)이 낮은 일을 맡을 경우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개고직비(階高職卑)이니 종일품계급(從一品階級)을 가진 사람이 정이품직급(正二品職級)인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면 관사명(官司名) 앞에 행(行)자를 붙여 숭정대부행이조판서(崇政大夫行吏曹判書)라고 부른다. 수직(守職)이란 품계(品階)나 자급(資級)이 낮은 관원이 직급이 높은 일을 맡을 경우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계비직고(階卑職高)이니 종이품계급(從二品階級)을 가진 이가 정이품계급(正二品階級)인 대제학(大提學)이 되면 관사명(官司名) 앞에 수(守)자를 붙여 가선대부 수홍문관대제학 (嘉전大夫守弘文館大提學)이라고 부른다. 행수직을 쓸 때는 행 . 수를 관명앞에 쓰되 7품이하는 자기의 품계에서 2계(階), 6품 이상은 3계를 뛰어 넘어서 관직을 받 을 수 없었다.

 

18. 영직(影職)과 실직(實職)

영직(影職)이란 직함(職銜)은 있으나 직사(職事)가 없는 허직(許職)과 같은 뜻이다. 즉 실제의 직무가 없는 명분상의 직을 의미하며, 근무하지 않고 이름만을 빌리던 벼슬을 일컬으며 차함(借啣)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70이상의 전함노인(前啣老人)에게 직을 제수(除授)할 때에 당상관이상 슬록대부이하인 자에게는 영직을 가자(加資)해 주되 전직(煎職)을 그대로 내려주었고, 통정실행정삼품직사자(通政實行正三品職事者)에게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해당하는 검직(檢職)을 내렸고, 통정미경정삼품직사자(通政未經正三品職事者)에게는 전자당상관검직(煎資堂上官檢職)을 제수하게 한 경우와 같아서 실제로는 영직전생서주부(影職典牲署主簿), 검직에 빈주부(檳主簿)로 제수하는 따위이다. 실직(實職)이란 직사(職事)가 있는 관직(官職)으로 조선초기의 관직에는 실직과 산직(散職)이 있으며, 실직 가운데에는 정식으로 녹봉(祿俸)을 지급 받는 녹관(綠官)과 그렇지 못한 무녹관(無祿官)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 증직(贈職)과 수직(壽職)

증직(贈職)이란 종이품이상 관원의 부, 조, 증조 또는 충신효자 혹은 학덕이 현저(顯著)한 사람에 대하여 죽은 뒤에 관직이나 품계를 추증하는 것을 일컫는다. 관료(官僚)의 영전(榮典)으로, 첫째 명유(名儒), 절신(節臣) 또는 왕실(王室)의 사친(私親)에게 사후에 품직을 추증하는 것과 둘째 고관(高官)의 부친(父親)에게 추증하는 것이 있고, 셋째 봉명출강(奉命出彊)하여 신몰이역(身歿異域)한자등 대상이 적지 않았다. 수직(壽職)이란 매년 정월에 80세이상의 관원 및 90세이상의 서민(庶民)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던 직품(職品)을 일컫는다.

 

20. 배필(配匹)

배필(配匹)이라 함은 배우자(配偶者)를 말하는 것인데 그 표시는 [배(配)]만을 기록한다. 더러는 생존한 배위에 대하여는 실인(室人)이란 [실(室)]자를 기록하며 죽은 사람에게만 [배(配)]자료 표시하는 문중도 있다.

 

21. 생졸(生卒)

생(生)이란 사람이 출생한 생년월일을 말한다. 보첩에서는 생족을 반드시 기록하게 하였다. 졸(卒)이란 사망을 말하는데,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이르기를 늙어서 죽음을 졸이라 한다. [수고왈졸(壽考曰卒)] 또 효자가 부모의 죽을을 휘(諱)하여 졸 [효자휘사왈졸(孝子諱死曰卒)]이라 하였고 춘추(春秋)에서는 군자가 죽으면 졸(卒)이라하고, 소인이 죽으면 사(死)라고 하였다. 보첩(輔諜)에는 20이전에 사망하게 되면 요절(夭折) 또는 조사(早死)라하여 [조요(早夭)로 표시하고], 70세 미안에 사망하게 되면 향년(享年)00이라 기록하고, 70세 이상에 사망하게 되면 수(壽)00라 기록한다.

 

22. 구묘(丘墓)

구묘(丘墓)란 무덤(무덤)을 이르는 말인데 분묘의 소재지이다. 보첩(譜牒)에는 [묘(墓)]자만을 기록하고 반드시 묘소의 방위(방위)와 석물[표석(表石), 상석(床石), 망주석(望柱石), 장군석(將軍石), 비석(碑石), 석등(石燈)]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표시하고, 배위와의 합장여부[부합폄(附合폄), 쌍분(雙墳)등도 기록한다.

 

23. 유생(儒生)과 유학(幼學)

유생(儒生)이란 조선시대에는 유교(儒敎)를 지배사상(支配思想)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공자의 학설을 받드는 유학(儒學)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서울의 성균관(成均館)의 유생 200명과 한성부(漢城府)의 행정구역인 관광방(觀光坊)의 중부학당(中部學堂), 창선방(彰善坊)의 동부학당(東部學堂) 성명방(誠明坊)의 남부학당(南部學堂), 여경방(餘慶坊)의 서부학당(西部學堂)의 사학유생 400명을 유생이라 일컬었고 지방의 향교(鄕校)의 생도 14,950명은 생도라 불렀다. 향교의 생도인 교생(校生)은 본래 양신분(良身分)이면 누구나 될 수 있었으나 점차 평민들이 액내생(額內生)을 차지하여 평미들의 신분상승의 길로 이용되었다. 이들은 성적이 우수하면 호역(戶役)을 면제받거나 기술관 또는 서리(書吏)로 세공(歲貢)되어 신분을 중인(中人)으로 상승시킬 수 있었고 매년 6월에 관찰사(觀察使)가 그 도의 교생을 한곳에 모아 강경(講經), 제술(製述)로 시험을 보아 우등자 3~5인씩을 생원(生員) 진사시(進士試) 회시(會試)에 직부(直赴)할 수도 있었다. 이로인해 양반자제들은 이들과 휩쓸려 생도되기를 꺼려 했다. 유학(幼學)이란 벼슬하지 않은 유생을 일컫는 말이다.

 

24. 후학(後學)과 산린(山林)

후학(後學)이란 유현(儒賢)의 학풍을 따르는 후진의 학자(學者)가 자신(自身)을 지칭하는 겸손(謙遜)한 호칭이며, 후생(後生), 후배(後輩)라고도 하나.

산림(山林)이란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준말로서 학덕이 뛰어나나 벼슬을 외면하고 은둔(隱遁)하여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25. 수단(修單)과 수단(收單)

수단(修單)이란 단자(單子)를 정비(整備)한다는 뜻으로서 보첩(譜牒)을 편찬(編纂)할 수 있도록 직계혈족의 명(名) . 휘자(諱字)와 사적을 계대에 맞추어 정리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경우 대개 보소(譜所)에서는 각파 수단위원을 정하고 수단(修單)작업을 시작한다.

수단(修單)이란 여러 사람으로부터 단자와 생년월일 사적 묘소좌향 기혼녀의 경우 배우자의 본관과 성명, 행적 등을 수집(收集)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명하전(名下錢)은 수단금(修單金)이며 접수기간은 수단(收單)마감일이라 해야 한다.

 

26. 서무(序文)과 발문(跋文)

서문(序文)이란 머리멀, 권두언(券頭言), 서언(序言), 서문(序文)이라는 말로 쓰이며 보첩의 서문이라면 대개 조상을 받드는 정신을 고취(鼓吹)함과 아울러 보첩간행의 필요성을 강조함은 물론 친족간의 화목(和睦)을 유도하는 것이 통례이다. 발문(跋文)이란 책 끝에 적는 글로서 발사(跋辭), 후서(後序), 편집후기(編輯後記)같은 것으로 보첩의 편찬과 간행하는데 있어서의 소감(所感)을 피력(披歷)하게 된다.

 

27. 교지(敎旨)와 첩지(牒紙)

교지(敎旨)란 왕(王)이 신하(臣下)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자격(資格), 시호(諡號), 토지(土地), 노비(奴妃)등을 내려 주는 명령서(命令書)로서 조선시대에는 4품이상 문(文) . 무관(武官)의 고신(告身) . 홍패(紅牌) . 백패(白牌)의 수여(授與) . 추증(追贈) . 향리면역(鄕吏免役)의 사패(賜牌)등의 경우에 교지를 내렸다. 첩지(牒紙)란 5품이하의 관원(官員)에게 주는 직첩(職牒)을 일컫는다. 그밖에 임금의 명령(命令)이나 하교(下敎)를 전교(傳敎)라 하였고, 추천(推薦)절차도 없이 임금이 직접 관원을 임명(任命)하는 것을 제수(除授)라 일컫는다.

 

28. 신도비(神道碑)와 묘갈(墓碣)

신도비(神道碑)란 종이품(從二品)이상인 관원(官員)의 분묘(墳墓)가 있는 근처 노변(路邊)에 세우는 비석(碑石)으로서 특히 이 비명(碑銘)은 통정대바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이 찬술(撰述)하는 것이 통례였다.

 

29. 묘표(墓表)와 묘지(墓誌)

묘표(墓表)란 죽은 사람의 관직(官職) 명호(名號)를 앞면에 새기고 후면에는 사적을 서술하여 음기(陰記)를 새기는 것을 일컬으며 보통 표석(表石)에는 운문(韻文)을 새기지 않는다. 묘지(墓誌)란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는데 죽은 사람의 원적(原籍)이나 사적(事蹟)등을 새기거나 도판(圖板)에 구워서 무덤 앞에 묻는 것이다.

 

30. 기로소(耆老所)

기로소(耆老所)란 별칭으로 기사(耆社)또는 기로(耆老)라고도 하며 조선조 태조때부터 노신(老臣)들을 예우(禮遇)하기 위하여 마련한 제도였다. 기로소에는 시산(時散) 1.2품의 관원 중에 나이 70세 이상자 만이 입참(入參)하게 되어 있다. 기(耆)라 함은 년고후덕(年高厚德)의 뜻을 지녀서 나이가 70세가 되면 기(耆), 80세가 되면 로(老)라하여 태조는 70세 이상의 기로(耆老)에게는 정조(正朝) 탄일(誕日)등 경사(慶事)외에는 조알(朝謁)하는 일을 면제하여 주어 경로의 뜻을 표하였고 임금도 늙으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올렸다.

 

31. 당상관(堂上官)과 당하관(堂下官)

당상관(堂上官)이란 문(文) . 무관(武官)의 십팔(十八) 품계(品階) 중에서 정삼품(正三品) 상계(上階)이상, 종친(宗親)은 명선대부(明善大夫), 의빈(儀賓)은 봉순대부(奉順大夫) 이상 승당(升堂)하여 의자에 않아서 정사(政事)를 보는 관원이라 하여 당상관(堂上官)이라고 한다.

당하관(堂下官)이란 정삼품 하계(下階) 이하(以下), 종친은 창선대부(彰善大夫), 의빈(儀賓),은 정순대바(正順大夫)이하의 관원을 호칭하는 말이다.

 

32. 치사(致仕)와 봉조하(奉朝賀)

치사란 정삼품 당상관 이상의 관리가 70세 정년이되어 관직을 그만 두는 것을 일컫는다. 봉조하(奉朝賀)란 직사(職事)는 없이 하례식(賀禮式)에만 참여한다는 뜻으로 공신 봉군자(功臣奉君者)와 공신의 적장자손(嫡長子孫) 및 동서반(東西班) 정삼품 이상의 직에 있던 관원이 치사한뒤에 주는 훈호(勳號)로서 재직시의 품계에 따라 소정의 녹봉(祿俸)을 급여 하게 되어 있는 일종의 은급제도(恩級制度)이다.

 

33. 사대부(士大夫)

사대부(사대부)란 원래 사품(사품) 이상은 대부(대부) 오품(오품) 이하는 사(사)라 하였으며 문관(문관)만을 의미하였는데 당시 사회가 문치주의(문치주의)였던 때문이지만 무관을 포함하는 전관료(전관료)를 사대부라 부르기도 하였다.

 

34. 원상(院相)

원상이란 왕이 승하(昇遐)하면 원로 재상급 또는 원임자(原任者)중에서 몇 분을 뽑아 잠시 정부를 맡게 하였던 임시직(臨時職)을 일컫는다. 새로운 임금이 즉위하였으나 상중(喪中)이므로 졸곡(卒哭)까지와 임금이 어려서 정무수행능력이 없을 때 대비(大妃)의 섭정(攝政)과 함께 원상이 국사를 처결하였다.

 

35. 음관(蔭官)과 음직(蔭職)

관(蔭官)이란 문벌(門閥)의 음덕(蔭德)으로 벼슬하는 것인데 고관(高官)이나 명신(名臣), 공신(功臣), 유현(儒賢), 전망자(戰亡者), 청백리(淸白吏)등의 자손들을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을 얻은 관원을 일컫는다. 음직(蔭職)이란 조상의 벼슬 덕으로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음직이라 하며 음사(蔭仕), 음보(蔭補), 남행(南行)이라 일컫는다.

 

36. 정문(旌門)

문(旌門)이란 효자(孝子), 충신(忠臣), 열녀(烈女)가 난 집 문 앞에 붉은 색 문을 세워 그 행적을 표창하였는데, 이를 정문(旌門)또는 홍문 (紅門)이라 일컫는다.

 

37. 사패지(賜牌地)

사패지(賜牌地)란 국가에 공(功)을 세운 왕족과 관리에게 사급(賜給)하여 주는 토지로 공신전(功臣田)이나 사전(賜田)을 내릴 때 록권(錄券) 교서(敎書)등과 함께 사여(賜與)의 대상(을 기록하여 지패(紙牌)로 내리는 토지를 말한다. 토지의 수조권(收租權)을 개인에게 이양(移讓)한 것으로 원래는 명문(明文)없이 사여한 일대한(一代限)과 사패에 가전영세(家傳永世) 「삼대세습(三代世襲)을 허락」의 명문(明文)이 있는 것 두 종류가 있는데 일대한으로 국가가 환수키로 되어 있는 토지도 환수되지 않고 영세사유화(永世私有化)가 됐다. 선조(宣祖) 이후에는 사패기록만 주고 실제로 토지는 사급(賜給)하지 않는다.